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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2007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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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저. -- [제2판]; 김택현 옮김.
개인저자Carr, Edward Hallett,1892-1982
Davies, R. W.,1925-
김택현
판사항[2007년판].
발행사항서울: 까치글방, 2008(c2007).
형태사항276 p.; 23 cm.
총서사항까치글방;133.
부분표제E. H. 카의 서문, R. W. 데이비스의 논문
대등표제What is history : the George Macaulay Trevelyan lectures delivered in the University of Cambridge January-March 1961.-- 2nd ed.
ISBN9788972914297
일반주기 부록: E. H. 카의 자료철에서 : 「역사란 무엇인가」 제2판을 위한 노트
원서편자: R. W. Davies
서지주기서지적 각주 수록
인명 색인: p. 273-276
분류기호901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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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멈추지 않는다 [ 000000201310374 | 2016.11.27 ] 5 | 추천 (1)  댓글달기

 E. H. 카의 대표 저서인 《역사란 무엇인가》는 다양하고 예리한 담론을 담고 있는 것은 물론이며 격동의 20세기를 목격한 한 역사학자의 농밀한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정규교육과정 중 국사 과목에서 한 번쯤 들어봤던 에드워드. H. 카는 랑케로 대표되는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을 비판하며 ‘역사’를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보았다. 그리고 더 핵심적이고 함축적인 문장이자 역사학에 길이 남을 명문(名文)을 남겼는데,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문장은 시적 표현에 우선 감탄을 터뜨리고 그 의미에 대해 숙고할 때 직관적으로 전달되는 오묘한 진리에 머리가 번뜩 깨이는 느낌이 든다. 이는 필자의 과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서 책의 정수가 저 한 문장에 전부 담겨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역사의 본질과 목적이라는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고 있기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본인 역시 역사학도가 아니기 때문에 어색하거나 버거운 느낌을 받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필수적인 교양으로 여기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시대의 요구에 따라 무턱대고 역사적 지식을 머리에 한가득 채워 넣는 것보다 역사라는 학문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탐구하는 자세를 가질 때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성과 자립심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라는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줄 실용적인 교본이 될 수도 있다.

 

 역사가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이라는 재료를 다루는 사람이다. 여기서 에드워드 카는 역사가가 그 재료를 선택한 의도와 목적에 집중하며 단순한 사실과 역사적 사실을 명쾌하게 구분한다. 역사가들은 카이사르가 루비콘이라는 작은 강을 건넜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전부터 루비콘 강을 건넌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이 대조되는 두 사실은 강을 건넜다는 행위는 똑같지만 역사가들의 관심 여부에 따라 역사로 탄생하거나 역사에서 탈락한 결과를 보여준다. 역사의 형성이 바로 이 부분에 달려있다. 역사가의 주관, 평가, 해석,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역사가의 개입이 있었기에 단순한 사실이 역사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필자가 지금 이 순간 루비콘 강을 건너도 그것은 사실일지언정 역사가들의 주목과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역사로 선택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보다 역사가의 해석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역사는 단순한 사실들의 나열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카가 그토록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을 비난했던 이유는 역사가의 역할을 경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을 취급한다는 점에서 분명 역사라는 학문은 객관성이라는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 지나친 주관성이 역사를 훼손한다는 우려와 비판이 이러한 주장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에드워드 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개인과 사회에 관한 독특하고도 설득력 있는 관점을 제기하며 역사가에게 완전한 객관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데카르트 같은 이성을 내세우는 서양 철학자들 덕택에 사람들은 사회에서 분리되어 개별화를 성취했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 개인과 사회는 상호간에 복잡한 형태로 의존 및 연관되어 있다.

 

 원시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사회의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며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아 사유를 형성하는데, 특히나 현대의 인간은 언론과 교육의 발달로 사회와 더 직접적인 관련성을 맺고 있다. 게다가 서양인과 동양인, 아니면 인접한 국가에 있는 사람들조차 사고방식에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둘러싼 사회 환경이 상당한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문화와 언어를 기초로 한 민족성의 차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처럼 개인과 사회는 완전한 분리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동화되어 있다고 간주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시대의 변천 역시 사람들의 의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아주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다. 세기에 따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발전과 변화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항상 일정한 상태로 정체되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례로 근대화를 시작하며 발견과 팽창으로 한껏 자부심이 부풀었던 찬란한 16세기의 유럽 사람들과 양차 세계 대전을 거치고 자신들의 권위가 다른 대륙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몰락한 20세기의 유럽 사람들의 생각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낙관적이고 역동적일 것이며 후자는 비관적이고 회의적일 것이다. 이는 각 시대를 살았던 역사학자들의 저작물을 봐도 뚜렷한 증거를 포착할 수 있다. 18세기 이전의 역사학자들은 역사를 진보적(progressive)이라고 묘사했으며 변화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나 이후의 역사학자들은 낙관주의를 버렸으며 변화를 두려운 것으로 보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가는 그 자신은 의식하지 못해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게 된다. 그래서 역사가가 역사의 밖에 서서 제3의 시선으로 과거의 사실을 보고자 해도 당시의 가치관에 의해서 판단하고 해석을 내릴 여지가 농후하다. 역사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될 수 없거나 절대적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가를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나 시대의 대변자로 격상시키는 긍정적인 기능이 여기에 담겨 있다.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역사가가 현재에 기반을 둔 채 과거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현재에 필요한 무엇인가를 과거에서 도출한 결론 또는 교훈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상당히 유익하고 쓸모 있는 대화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 지향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를 진보적이라고 확신한다. 과거의 유산을 통해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의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불투명하고 암울하게 점치고 있으며 더 급진적인 자들은 종말론에 가까운 예견을 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칼과 총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하거나 반동(反動)이라고 불리는 역사적 후퇴가 반복될 때마다 역사가 진보적이라는 믿음에 의문을 가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정적이고 균일한 특성을 가진 흐름이 아니다. 때로는 이처럼 퇴보로 보이는 역사가 나타날지라도 변화의 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왜 그러한 현상이 반복되는지 해석하고 판단하는 일은 역사가의 몫이며 그들이 자신들의 책무를 다한다면 후손들은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지침을 얻을 수 있다.

 

 역사는 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하는 양상을 갖고 있기에 언제나 이상적인 측면만을 보여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현실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우리가 역사를 계승하고 보이지 않는 어떤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목적은 완벽에 다가서기 위해서다. 비록 그 실현은 불가능할지라도 우리는 이전보다 더욱 나아지고 있으며 진보하고 있다. 확실히 과거에 비해 우리는 많은 분야에서 기술적 성취를 이루어냈고 시행착오를 거쳐 다듬어진 제도를 보유하고 있다.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통틀어서 반동적인 사건은 줄기차게 발생했지만 언제나 다음 단계로 진입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에드워드 카가 그랬듯이 우리도 역사는 진보라는 믿음을 포기할 수가 없다.

 

 역사는 단순한 전승이 아니다. 생명을 갖고 있듯이 역동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있으며 그걸 추적해 이유와 원리를 알아내는 일은 과학과 다를 바가 없다. 역사가 가진 가치와 존재 목적을 폄하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현재를 통해 과거를 이해한다. 결국 이 상호작용이 우리에게 있어 미래의 방향을 결정할 주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그에 따라 역사는 진보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1961년에 출간된 《역사란 무엇인가》는 그로부터 몇 십 년이 흐른 오늘날에 검토해봤을 때 일부 내용에 관해서 숱한 비판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에드워드 카의 이론은 학문의 발전에 따라 진부하고 결점을 지닌 낡은 책 한 권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논의하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관한 시사점은 시대가 변해도 그 중요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 변화와 발전이야말로 인류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미래에 도달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진리를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가 미래를 형성하는 것이다.

영화 '변호인' 불온서적, 역사란 무엇인가 [ 000000200810223 | 2014.06.08 ] 5 | 추천 (15)  댓글달기

오늘 소개할 책은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이다.

해석이 이해하기 어렵게 된건지, 문학책만 읽던 나의 집중력 문제인지

집중해서 읽는데 어려움을 많이 느꼈던 책인 것 같다.

아마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한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갖는 분들이 계실수도 있다.

이 책은 바로 영화 변호인에 등장한다.

송강호(극중 송우석)가 법정에서 이 책을 손에 들고 검사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과 함께 이런 비슷한 내용의 대사를 한다.

​<검사가 이 책은 공산주의자가 쓴 책이라고 우기자...>

송우석曰 ‘영국 대사관 측의 답변 “책의 저자는 영국 사람이며 외교관으로서

러시아로 갔다. 훌륭한 외교관이자 역사학자이며, 한국의 국민들이 이 책을 많이 보기를 바란다” 라고 답했다.’

 

그렇다. 이 책의 작가는 E.H 카 , 실제로 러시아에서 외교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훌륭한 작가다.

과연 어느 책이길래 영국 대사관이 몇 십년 전, 한국의 국민들에게 이 책을 권장했던 것이며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길래

불온서적으로 1998년까지 못읽게 금서로 지정되었던 것일까?

 

이 책의 목차와 함께 본격적인 내용을 설명해나가겠다.

1. 역사가와 그의 사실
2. 사회와 개인
3.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4.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5. 진보로서의 역사
6. 지평선의 확대
부록
E.H 카의 자료철에서:
'역사란 무엇인가' 제 2판을 위한 노트
역자후기
인명색인

1. 역사가와 그의 사실

 

랑케는 역사가의 임무를 ‘그것은 실제로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과학으로서의 역사를 열렬히 주장한 실증주의자들은 이러한 사실 숭배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 당시 영국철학의 지배적인 경향이었던 경험주의적 인식론)

그렇다면 그 실제는 무엇일까?

한 가지 가정을 예로 들자면

1.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

2. 와이피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

나와 카이사르가 강을 건넜다는 사실은 똑같은 과거에 관한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2번째 사실을 무시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가정에서 조차 과거에 관한 사실 모두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혹은 역사가에 의해서 그렇게 취급되지 않는다고 하는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역사의 사실과 과거의 사실이긴 하되 역사적인 사실은 아님을 구별해주는 기준은 무엇일까?

언젠가 톨콧 파슨스교수는 과학을 ‘실체에 대한 인식적 지향의 선택체계’라고 정의했다. 역사란 뭐니뭐니해도 바로 그런 것이다. 역사가는 필연적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딱딱한 속알맹이가 객관적으로 그리고 역사가의 해석과는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믿음은 어리석은 오류이지만, 그러나 뿌리 뽑기는 매우 어려운 오류이다.



콜링우드는 역사철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역사철학은 ‘과거 그 자체’에 관한 것이라거나 ‘과거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상호 관련되는 그 두 가지’에 관한 것이다.’ ‘모든 역사는 사유의 역사’이며 ‘역사란 사유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역사가가 그 사유를 자신의 정신 속에 재현하는 것’이다. 역사가의 정신 속에서 과거의 재구성은 경험적인 증거에 의존하며 반대로 그 재구성의 과정이 사실들의 선택과 해석을 지배한다: 참으로 사실들이 역사적 사실들로 바뀌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오크셔드:역사란 역사가의 경험이다 역사는 역사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는 ‘만들어지지’않는다:역사를 서술하는 것만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진리들이 있다.

1.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결코 ‘순수한’ 것으로 다가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2.역사가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생각을 상상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3.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해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역사관에서 큰 위험성을 고찰하게 된다.

역사를 구성하는 데에서 역사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만일 그것을 논리적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면, 모든 객관적인 역사를 배제시키는 것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아니, 그렇다면 결국 조지 클라크 경이 말한 “객관적인”역사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어떤 산이 보는 각도를 달리 할 때마다 다른 형상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 산은 객관적으로 전혀 형상을 가지고 잇지 않다거나 무한한 형상을 가진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콜링우드의 가설 속에서 훨씬 더 커다란 위험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눈을 통해서 자신이 연구하는 역사적 시대를 바라보아야만 하고, 또한 과거의 문제들을 현재의 문제들의 열쇠로서 연구해야만 한다면, 그는 사실에 관한 순전히 실용적인 견해에 빠져 올바른 해석의 기준은 현재의 어떤 목적에 대한 그 해석의 적합성이라고 주장하지 않을까? 는 점이다.

 

인간은 아마도 아주 어렸을 때나 아주 늙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환경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으며 무조건 그것에 예속되지도 않는다. 그런 반면, 인간은 결코 그의 환경에서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고 그것의 무조건적인 지배자일 수도 없다. 인간과 그의 환경의 관계는 역사가와 그의 연구주제의 관계와 같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의 관계는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이다. 연구 중에 있는 역사가가 잠시 일을 멈추고 나서 자신이 생각하고 글을 쓰는 동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다 알 수 있듯이, 역사가는 자신이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어내고자 또한 자신의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들어 내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둘 중 어느 한쪽을 우위에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가는 사실의 잠정적인 선택과 그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인 해석에서 출발한다. 그가 연구하는 동안 사실의 해석 그리고 사실의 선택 및 정돈 그 두 가지는 이러저러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미묘한 그리고 아마도 얼마간 의식되지 못하는 변화들을 겪는다. 그리고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도 역시 포함되는데, 왜냐하면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며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이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자신의 사실을 가지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 없는 존재다. 자신의 역사가를 가지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2.사회와 개인

 

역사가들은 어느 정도까지 단일한 개인들이며 어느 정도까지 그들의 사회와 시대의 산물인가? 역사의 사실은 어느 정도까지 단일한 개인들에 관한 사실이며 어느 정도까지 사회적 사실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답하기 전에 역사가 개인과 사회에 대해 설명하자면..

역사가는 알다시피 한 사람의 개인이다. 다른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사회적 현상으로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대변자이다 ; 바로 이러한 자격으로 그는 역사적 과거의 사실을 연구한다. 우리는 때때로 역사의 경로를 ‘움직이는 행렬’ 이라고 말한다.

 

카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라. 역사가는 개인이면서 또한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바로 이 두 가지의 관점에서 역사가를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사람은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상황에 어느 정도 포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가 문제에 접근하는 상황과 그의 입장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과정, 즉 현재와 과거사이의 대화라고 불렀던 그 과정들은 추상적이고 고립적인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사이의 대화이다. 사회와 개인의 대립을 가상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게 하여 우리의 사고를 혼란 시키려는 미끼에 불과하다.부르크하르트의 말을 빌리면, 역사란 ‘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찾아내는 주목할 만한 것에 관한 기록’이다. 과거와 현재는 서로를 비추어야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 이것이 역사의 이중적인 기능이다.

3.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카는 수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또는 수학과 자연과학 영역 내의 상이한 학문분야 사이에 큰 차이가 있듯이, 그 학문들과 역사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그 차이 때문에 역사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논의들을 정중하게 고찰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카는 역사와 과학, 이 두 가지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5가지 정도로 요약해 조목조목 반론을 하였다.

 

그 중 첫 번째 주장과 반론은 ‘바로 역사는 오로지 특수한 것만을 다루며, 과학은 일반적인 것을 다룬다?’ 는 것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의 관계를 다룬다. 여러분이 역사가라면 사실과 해석을 분리시킬 수 없듯이, 그 두 가지를 분리시키거나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우월한 것으로 취급할 수 없다.

마르크스”놀라울 만큼 유사하더라도 상이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완전히 다른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들을 따로따로 연구하고 난 후에 그것들을 비교한다면, 그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두 번째 반론하고 싶은 것은 역사는 종교와 도덕의 문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과학 일반과는 구별되며 심지어는 다른 사회과학과도 구별될지도 모른다는 견해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제멋대로 행성의 경로를 변경시키려고 일식이나 월식을 지연시키기 위해 우주의 운동규칙을 바꾸려고 끼어드는 어떤 신을 믿는다는 것과는 양립할 수 없다. ->말도 안되는 역사 

진지한 천문학자가 된다는 것과 우주를 창조하고 정돈한 어떤 신을 믿는 다는 것은 양립할 수 있다.

->과거의 왜곡, 과장된 사실에 따르는 것이 아닌 입증하기 위대한 진실,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것들 대한 개인적인 믿음은 존재할 수 있다. 다루는 자료 자체가 종교, 도덕과 관련되는 일이기에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과학자와 사회과학자 역사가는 분야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가 동일한 연구를 하고 있다 ; 그것은 인간과 환경에 관한 , 다시 말하여 환경에 대한 인간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환경의 영향에 관한 연구이다. 연구목표도 동일하다 그것은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지배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물론 전제와 방법은 세세한 부분에서는 크게 다르다.

역사가도 여느 다른 과학자처럼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동물이기 때문에 역사와 과학은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4.역사에서의 인과관계

 

 

나는 왜 사는가? 왜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왜 나는 애인이 없지?

우리도 저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끊임없는 질문을 하곤 한다 

역사란 앞 장에서 설명 드린 대로 왜?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대상이며

역사가는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어떤 대답을 바라는 한, 그는 쉴 수가 없다.

위대한 역사가란 새로운 것들에 관해서 또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왜?’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스미스가 평소 날씨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거나 학교에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며 인사를 건낸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스미스가 여러분의 용모나 성격에 대해서 갑자기 거칠게 욕설을 퍼부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분명히 그의 행동에 무엇인가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겉으로는 아무런 이유도 없어 보이는 스미스의 행동의 원인을 진단해보려고 할 것이다. 

역사가도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행동에는 원칙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원인이 있다고 믿고 있다.

 

 

‘러시아 혁명은 필연적이었는가?’

‘만약 농업개혁을 완성할 시간이 있었거나 러시아가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다면 혁명은 발생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지 역사에서 그랬을지도 모를 것들을 가지고 퀴즈놀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결정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결정론자는 단지 이런 일들이 발생했으려면 그 원인들도 달랐어야만 했을 것이라고 대답할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들은 역사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클레오 파트라의 코’ 역사란 전체적으로 우연의 계속이라는 즉 우연의 일치에 의해서 결정되고 가장 뜻밖의 원인에서만 유래하는 사건의 연속이라는 이론이다. 아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얼이 빠진데 있어서 악티움 해전의 결과가 바뀌었다는데서 비롯된 말이다.

 

바야지드는 관절의 염증때문에 중앙유럽으로 진격할 수 없었을 때, 기번은 ‘한 인간의 단 한 개의 근육을 엄습한 매서운 통증이 여러 민족의 불행을 막거나 지연시킬 수도 있다’ 고 말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애지중지하던 원숭이에게 물려서 사망했는데, 이 우연은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켰고 윈드턴 처칠로 하여금 ‘ 그 원숭이가 물었다는 사실 때문에 25만명의 사람이 죽었다’ 고 말하게끔 만들었다.

트로츠키는 오리사냥을 하다가 열병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되었는데 그는 ‘누구나 혁명이나 전쟁을 예견할 수 있지만, 가을철의 들오리 사냥여행의 결과를 예견하기란 불가능하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결정론의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안토니우스의 얼빠짐에는 어떠한 원인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에 쓸데없이 실례를 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여상의 아름다움과 남성의 얼빠짐 사이의 연관은 일상생활에서 관찰될 수 있는 가장 정상적인 인과적 전후 관계들 중의 하나이다.

 

 

 

평상시의 음주량 이상을 마시고 파티에서 돌아오고 있던 존스는 거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컴컴한 길 모퉁이에서 나중에 브레이크에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차로 로빈슨을 치어 죽였는데, 로빈슨은 마침 담배를 사기위해서 길을 건너고 있던 중이었다.

 

사고의 원인이 반쯤 취한 운전자 때문인지 브레이크, 혹은 컴컴한 길모퉁이었는지 논의하던 도중 두 사람의 유명인사가 들어와서 우리에게 말한다. “로빈슨이 그날밤 담배갑에 담배만 들어있었다면 그 길을 건너지도 않았을 것이며 죽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어떻게 답해야할까? 당연히 ‘당신들은 사고의 인과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소’라고 말해야만 할 것이다.

역사는 실제에 대한 인식적 지향의 ‘선택체계’ 일 뿐만 아니라 인과적 지향의 ‘선택체계’ 이다.

 

역사가는, 끝없는 사실의 바다에서 자신의 목적에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수한 인과적 전후 관계 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을, 오직 그런 것만을 추출해낸다;그리고 그 역사적 중요성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은 그 전후 관계를 자신의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의 모형에 짜맞추는 역사가의 능력이다. 그 밖의 다른 인과적 전후 관계들은 우연적인 것으로서 배제되어야만 하는데, 그 이유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전후 관계 자체가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안토니우스을 얼빠짐에 빠뜨린 것은 맞지만 왕들이 아름다운 여왕들에게 홀리면 전투에 패배한다 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잘못된 전후 관계의 성립이며 일반적인 명제라고 할 수 없다. 올바른 인과관계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 

인과관계를 따져보았을 때 우리는 합리적인 원인과 우연적인 원인으로 구별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합리적인 원인은 왼쪽의 그것들이며 우연적인 원인은 담배를 사러 갔다는 사실이지만 절대로 일반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우연적인 원인,그것은 그야말로 독특한 것이며 어떠한 교훈을 가르쳐주지도 어떠한 결론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논점을 또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역사에서의 인과관계를 다루는 데에 열쇠를 제공해주는 것은 바로 이렇듯 떤 목적이 고려되고 있는가 하는 관념이다.

마이네케”역사에서의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는 가치와의 연관없이는 불가능하며, 인과관계의 연구 이면에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항상 가치의 추구가 놓여있다’

역사가는 이처럼 수많은 사건들의 인과관계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빼내는 역할을 가지고 수행해야 하며, 가치판단에서 비롯된 합리적인 근거과 목적을 가지고 해석을 해나가야 한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호이징가는 ‘역사적 사유란 항상 목적론적이다’ 라고 말한다.

에드워드 카는 말한다 '역사가는 ‘왜?’라는 질문에 더하여 ‘어디로?’ 라는 질문도 제기하는 사람이라고..'

 

 

5. 진보로서의 역사

 

 

포위크 교수(옥스퍼드 대학교의 근대사 흠정강좌 담당 교수) 취임식 강연 ‘역사를 해석하려는 열망은 너무도 뿌리깊은 것이어서, 만일 우리가 과거에 대하여 무엇인가 건설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신비주의나 냉소주의에 빠지게 된다.’

 

진화와 진보는 별개의 것이다.

진화는 생물의 종 및 더 상위의 각 종류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점차 변화해 온 것을 말하며

역사에서의 진보는 사회적인 획득이다.

중국인 아이를 미국인 가족에게 맡기면 그 아이는 피부는 황색이겠지만 영어를 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피부색의 형성은 생물학적 유전이며, 중국말을 하는 것은 인간의 두뇌를 매개로 하여 전승되는 사회적 획득물 이다.

5000년 전의 조상보다 현대인의 두뇌는 더 크지도 않으며 타고난 사고능력이 더 큰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인 들은 그동안의 여러세대의 경험을 습득하여 그것을 자신의 경험에 합체시킴으로써 사고의 유효성을 몇 배나 증가시켜왔다.

이를 획득형질 이라고하는데 이 획득형질의 전승이야 말로 사회적 진보의 기초하고 할 수 있다.

역사란 획득된 기술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것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진보에 일정한 출발점이나 종점이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어느 한 시대의 문명을 전진시키는 일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집단은 다음 시대에도 그와 똑같은 역할을 할 것 같지는 않다.그 이유는 그 집단이 전 시대의 전통, 이해관계, 이데올로기 등에 너무 깊게 물든 나머지 다음 시대의 요구와 조건들에 부응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집단에게는 쇠퇴의 시기로 여겨지는 것이 다른 집단에게는 새로운 전진의 시작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고로 진보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고 동시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때로는 진보의 시기에 퇴보의 시기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진보의 길은 중단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변화는 언제나 고정불변의 어떤 것에 의해서 설명되어야만 한다는 전통적인 가설은 역사가의 경험과는 상반된다. 

버터필드 교수는 ‘역사가에게 유일하게 절대적인 것은 변화이다’라고 말하고 잇다. 

현재의 사유는 반드시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것이란 여전히 불완전하고 형성과정 중에 있는 어떤 것  

(우리가 전진하는 미래속의 어떤 것, 우리가 전진할 때에야만 형성되기 시작하는 어떤 것, 그리고 전진함에 따라서 우리가 점차 과거에 대한 해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빛을 밝혀주는 어떤 것)이다.

 

역사는 그 본질상 변화이자 운동이며, 진보이다.

20세기 중반의 세계는 15세기와 16세기에 중세세계가 몰락하고 근대세계의 기초가 놓여진 이래 세계를 덮쳐왔던 모든 변화과정 중에서 가장 심원하고 가장 광범한 것임에 틀림없을 그런 변화 과정을 겪고 있다.

 

​6. 지평선의 확대

(1) 근대 사회로부터 시작된 의식의 변화

사람들이 시간의 경과를 자연적 과정(ex:계절의 순환)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의식적으로 연루되고 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정한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역사는 시작된다.

인간이 자기의식의 발전이 보여준 근대세계에서의 그 변화는 데카르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는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의 사유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 즉 관찰행위를 하고 있는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지위를 최초로 확립했고, 그 결과 인간은 사유와 관찰의 주체이자 동시에 객체가 되었다. 이후 루소를 거쳐 18세기로부터 근대세계로의 의식 이행은 헤겔과 마르크스가 맡게 되었다.

헤겔은 개인은 자신만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지만 그러는 가운데 그 이상의 어떤 것, 즉 비록 그들의 의식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의 행동에 잠재해 있는 어떤 것이 성취하려는 욕망의 기회를 만든다. 그 욕망의 의도는 세계정신의 합리적인 목적과는 다르다’ 고 말한다.(이성의 간계)

-> 줄이면 사람들은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와중에 자신이 의식하지도 않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역사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일관된 합리적인 전체를 구성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것을 의미했다.

 

1.객관적이고 주로 경제적인 법칙에 일치하는 사건의 운동

2.그것에 조응하면서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유의 발전

3.그리고 그것에 조응하면서 혁명의 이론과 실천을 일치시키고 결합시키는 계급투쟁 형태의 행동

 

마르크스는 지금까지 인간이 의식하지 못한 채 복종해온 법칙들에 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한다:그는 자본주의 경제와 자본주의 사회에 얽매인 사람들의 이른바 ‘허위의식’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상기시켰다:생산과 유통의 담당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생산의 법칙에 관한 개념은 실제의 법칙과는 크게 다를 것 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사람들의 행동은 그들이 스스로 주장하거나 믿고 있는 행위의 동기를 통해서 사실상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오랜 환상의 관에 최후의 못질을 했다.(사람들의 행동은 행위의 동기를 알더라도 적절하게 설명될 수 없다. 게다가 죽은 자를 심문하는 것은 불가능 하므로 역사적 인물의 동기를 완벽히 알기란 어렵다.)

또한 역사가에게 자신과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주자네 시대에 대한 선택을 이끌고 사실에 대한 선별과 해석을 이끈 동기(숨은 동기겠지만)를 그의 시각을 결정한 민족적 배경과 사회적 배경을, 그리고 과거에 대한 관념을 형성시키는 미래에 대한 관념을 심문해보라고 촉구했다.

이렇듯 과거로 부터 역사에 관한 인간의 의식적 변화는 끊임없이 변화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이다.

 

(2) 세계사의 변화, 이성의 확대

세계 1차 대전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세계적인 규모의 결과를 낳은 유럽의 내전이었다.

그 결과 다수의 아시아 국가들의 산업발전과 중국에서의 반외세 감정, 인도의 민족주의 촉진, 아랍 민족주의가 탄생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러시아에서의 혁명은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서 모방되었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곳’이 된 쪽은 유럽이었고 움직이는 쪽은 아시아가 돼버렸다.

아직도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많은 국가는 초보적인 교육과 정치의식을 갖고 있지 않지만 그 곳이 ‘쓸모 없는 땅덩어리’라는 인식은 오늘날 대단히 낡아빠진 상투어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학문에서든 역사에서든 사회에서든 인간사에서의 진보는 기존질서의 점진적인 개선을 추구하는 일에 스스로를 제한시키지 않고 현존질서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이 의지하고 있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전제들에 대하여 이성의 이름으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인간들의 그 대담한 자발성을 통해서 주로 이루어진 것이다. 

가장 두려운 사실은 변화가 더 이상 성취로, 기회로 진보로 생각되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영어사용권 세계의 역사가들과 사회학자들과 정치사상가들이 그 과업을 위해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근래 정치 및 경제 전문가들이 처방을 내릴 때, 그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란 급진적이고 원대한 이념은 믿지 말라는 훈계, 혁명의 냄새가 나는 것은 모조리 피하라는 훈계, 가능한 한 천천히 조심스럽게 전진하라는 훈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세계의 모습이 지난 400년간의 그 어느 때보다 더 급속하고 더 철저하게 변화하고 있는 이 때에, 그런 처방은 일종의 굉장한 무지라고 생각되거니와, 그 무지 뒤에 들어서는 것은 세상이 멈춰버릴 것이라는 불안감이 아니라 이 나라가 전반적인 진보에 뒤쳐지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 그리고 무기력하게 또한 체념한 채로 어떤 향수 어린 침체 상태에 빠져들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인 것이다. 

나 자신으로 말하자면 낙관론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고 나서 진부하기조차 한 어느 위대한 과학자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 그래도 – 그것은 움직인다 ‘

 

 

+롤랑전

 

전쟁이 있었던 8~9세기 이후 음유시인(트루바두르)가 이 사라센 군을 ‘악의 세력’으로 보고 이 이야기를 노래와 말로써 후세에 전달하여 전쟁 300년 후인 십자군전쟁 발발 시기에 책으로 쓰여졌다. 

그리스도교 중심의 종교적 관점에서 이슬람교를 ‘이교도’라고 칭하였고 사라센 군 세력의 토벌과 십자군 전쟁을 정당한 행위로 간주하였다. 

어떻게 보면 왜곡되거나 너무나 주관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쓰인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역사 인식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전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상과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식체계를 이해할 수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오로지 그리스도교의 승리를 위해’ 라는 문학작품을 통한 역사적 메시지를 통해 중세의 정치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사고방식을 가조기 살았는가 ? 하는 물음의 해답을 찾을 수 있기에 구전문학작품을 비난하는 시선으로만 바라볼 순 없다.​

 

 

+에밀 

 

 

사회의 기초는 정념이고, ‘자기애’를 제외한 인간의 모든 감정은 넓은 의미의 상상력에서 나온다. 타인과 맺는 관계 중 가장 초보적인 형태의 정념인 ‘동정심’ (pitie)이 상상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 고통스러워하는 동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우리의 존재를 떠나 그의 존재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동정심에 마음이 동요되겠는가? 우리는 그가 고통스러워한다고 판단하는 한에서만 고통스러워한다. 우리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우리 내면에서가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든 상상력이 활발해져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할 때만 감성을 갖게 된다. -에밀4권 中- 

‘상상력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 타인과 동화된다.’

 

​나는 역사도 에밀에서 루소가 말하는 상상력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사실을 연구한다는 것은 크고 작은 사건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인물에 대해서도 논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과거 인물과의 대화는 죽은 자를 다시 불러와 심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과거 인물과의 대화를 ‘객관성을 토대로 상상력을 동반한 끊임없는 역사가의 노력’이라고 정의를 내려보았다. 

여러분들도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번 쯤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보았으면 좋겠다.

나름대로 롤랑전과 에밀같은 다른 색깔의 작품을까지 덧붙여 설명하고 이해를 돕고자 하였지만

책을 여러 번 읽은 나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에 이어 역사란 무엇인가도 읽어보았다.

산더미같은 책을 읽는 친구놈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동아리 발표를 위해

여러가지 학자와 그들의 견해, 특히 어려워서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몇 몇 인물들(마르크스와 헤겔같은; 이런 책은

그들의 논리를 요약해서 이해하기 쉽게 보여준다.)을 접해보는 기회가 되어 힘들게 완독한만큼 기분도 좋았다.

정말 힘들게 완주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점이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하고 뿌듯함을 느끼게해준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더 느낀 점이 있다면 앞으로는 조금 읽기 어려운 책들도 자주 접하며 집중력과 이해능력을 향상 시키도록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 아무튼 여러모로 많은 것을 내게 선사해준 선물과도 같은 책이었다. 

땡큐 에드워드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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